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섰다

여전히 휘황찬란한 가부키초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여기저기 호스트들과 호스티스들이 영업하는 사이를 뚫고 밥 먹을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첫날이라 그런지 먹을 만한 식당이 눈에 띄지 않는다

결국 밖에 가격표를 보고 들어간 곳은 호프집이다
일단 영어로 메뉴를 시키니 여자 알바는 주인어른을 데려온다
주인어른께 치킨을 요청하고 맥주도 한잔 시킨다

8시가 안됐는데 몇 분데 자리는 차있다
전대를 허리에 찬 내 모습에 앞자리 아저씨가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 느껴지지만 애써 외면한다

치킨이 나왔지만 6점 정도밖에 없다
역시 일본은 소량으로 주는 게 맞구나라고 생각하고 소고기로 보이는 것을 하나 더 주문한다
알바 한분이 나에게 메뉴판을 주면서 "한국에서 오셨나 봐요"라고 한국어로 묻는다
와우 첫 날에 만난 여자 알바가 한국인이라니... 뿌듯하다
예뻐서 더욱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치킨도 소고기도 맛이 없다
호프집 안주가 맛없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은가 보다

대충 먹고 마신 후 여기저기 둘러본다
뭔가 음침하지만 도쿄에서 봤던 카페촌들이 뒷골목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일단 들어가 본다

 

신주쿠 가부키초의 카페촌

한두 블록인데 벌써 오픈한 곳도 있다
들어가고 싶지만 일본어가 안되고 주인장도 한국어가 안될 듯해서 이리저리 더 둘러본다
그리고 한 카페의 문에 있는 메모가 눈길을 끈다

 

가부키초의 카페에 붙은 메모 "If you have a problem Ask me!! I love English! and you. No Charge "

 

이 집에 오면 문제는 없겠군 하고 다시 호텔로 들어와 샤워하고 여독을 푼다

 

# 밤 10시 이후 외출


밤 10시가 됐다
벌써 자기에는 뭔가 아쉽다

아까 봤던 카페를 찾아 밖으로 나간다
또 한 번 헤매고 난 후 카페를 찾았다

아쉽게도 주인장이 남자다
다른 카페는 모두 여자인데...
영어로 의사소통한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 대화하는 맛은 떨어질 듯하다

카페엔 바에 3명의 서양 남자가 빈 술잔을 앞에 두고 있고 가장 안쪽엔 나이 든 일본 할아버지가 TV를 열심히 보고 있다
주인장은 긴 머리의 인디언풍의 남자다

뻘쭘하게 들어가서 바에 앉고 주문을 받는다
역시 첨이라 당황해서 그냥 위스키라도 답한다. 무슨 위스키냐는 물음에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일본 위스키 산토리를 마실려나고 묻는다
일단 알았다고 답변하고 나니 언더락인 이유를 묻는다
역시 버벅거리면서 말하는데 의사소통이 어렵다

영어인데 왜 어려운 거지 하고 생각해보지만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냥 새로운 곳이라 당황한 거다

천천히 분위기를 살피면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3명의 서양 남자들은 벨기에에서 왔다고 한다
벨기에 잘 알지 하자 놀라는 듯하다

작은 나라인데 어찌 아느냐고 나에게 물어본다
세계사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답변해준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이라 그냥 서양 친구라고 칭하자
서양 친구는 대학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데 불편한 다리 때문에 주문한 로봇다리 같은 인공 다리 제작을 위해 한 달간 휴가를 내고 일본에 왔다고 한다
인공 다리를 하게 되면 마치 로보캅처럼 될 거라고 편하게 얘기한다

한 달의 휴가에 감동한 나는 역시 벨기에는 좋은 나라라고 띄워준다

벨기에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난 하루에 12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고 얘기하다 고개를 저으며 벨기에로 이민오라고 한다
그래서 난 대답한다
그래도 한국이 제일 좋다고. 한국인이기에 말도 잘 통하고 인종차별도 안 받는데 왜 외국 가서 고생하겠냐고
하루 열두 시간 일하는 한국이 좋다고 말해주자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서양 친구가 불교를 믿는다고 하자 나는 기독교를 믿는다고 한다
서양 친구는 유럽 사람이 불교를 믿고 아시아인이 기독교를 믿는 건 참 묘한 일이라고 한다
이 친구의 불교는 일본 스타일 불교라고 한다
Amitabha Buddha라고 하는데 아마도 아미타불을 믿는 종파인 듯하다

서양 친구는 그래서 육류와 물고기종류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와인과 술 종류는 마신다

서양친구는 육류를 섭치 하고 소화하기 위해 방출되는 유해가스가 자동차 유해가스보다 더 위험하다고 열을 올린다
물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방생 때문이라고 하는데 자신도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한다

얘기를 하다 보니 페이스북으로 친구 요청을 한다
서양 친구는 소셜 서비스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프라이버시 문제 때문에 이름도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12시가 넘어가자 내일 일정 때문에 일어나고 서로 인사를 나눈다. 일본 할아버지는 한참 전에 가셨다

조금 지나자 일본 청년 하나와 40대 정도 되는 일본 아저씨가 입장한다
일본 청년과 아저씨는 영어를 알아듣지만 말은 잘 못한다

바에 있으면 모두 심심해서 결국 뭔가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일본 청년은 원형 테이블에서 혼자 와인을 마시다가 바로 들어온다
아저씨는 아이폰을 꺼내서 이리저리 만지작거린다
주인장도 아이폰을 꺼내서 만지작거린다
청년은 아이팟이 있고 나도 아이폰을 만지작거린다

4명 다 애플 제품을 가지고 놀다 대화로 들어간다

호구조사를 하니 주인장은 총각으로 추정되고 40대 아저씨와 청년을 포함한 손님 3명이  모두 총각이다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난 꼭 결혼할 거라고 얘기한다

일본에서 아이패드를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자 중국제 짝퉁을 사러 왔냐고 한다
중국제 짝퉁 iPed가 아이패드, iPad는 아이팟, iPod는 아이폿이라고 한다
속으로 한마디 해본다
그래도 내가 미국식 발음으로 하는 거거든...

월드컵 축구로 화제가 바뀌자 한국이 16강 진입한 것에 대해 대단하다고 칭찬이다
일본은 이틀 후 덴마크와 축구를 하게 되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덴마크는 강팀이라 결국 그날이 Judgement Day가 될 것 같다며 걱정한다


위스키 1잔과 시라즈 와인 2잔을 마시니 새벽 2시다
첫날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남자들
새벽까지 술 마시고 대화하고 숙소에 들어와 잠을 청한다

Posted by 지구의 방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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